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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YAK HISTORY

산악인과 함께한 46년간의 끊임없는 도전,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로

꽃이 피다 (2010-2012)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

 

<2012 독일 뮌헨 ISPO>


2010년 12월 14일 한국의 종합주가지수(KOSPI)가 3년 1개월 만에 2,000포인트 대를 돌파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938.75포인트까지 추락한 이후 다시 회복을 했다. 유럽재정위기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중국의 긴축이라는 3대 악재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2011년에 한국은 수출입을 합산한 교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기면서 세계 9번째 무역대국에 진입했고, 경제개발 50년 만에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일본 대지진, 유럽재정위기 확산 등 세계 경기침체 영향으로 교역 여건이 극히 악화된 속에서 일궈낸 일이었다. 한편, 4년 4개월 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2011년 11월 22일 국회를 통과했고 청와대까지 파고 든 저축은행 비리, 종합편성채널 4개 회사의 특혜 논란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유럽재정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2012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에 그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6.3%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체력을 과시했지만, 2011년에는 3.6%로 떨어지면서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와 부동산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대출 수요 부진으로 저금리가 장기화되었다.
하지만 국가의 신용등급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012년 8월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피치는 무디스가 올린 지 열흘 만에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8일 뒤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높여주었다.
유럽재정위기 이후에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상향 조정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피치 기준으로는 중국과 일본보다도 높아졌고, 무디스 기준으로는 세 나라가 같아졌다. S&P 기준으로는 중국과 일본보다 한 단계 낮았다.
한국 사회는 2012년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민주화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재계 서열 10위의 그룹 총수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법정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리고 웅진그룹의 신화도 몰락했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까지 받았다. 또한 골목상권 보호와 전통시장 활성화 등을 위해 대형마트・기업형수퍼마켓(SSM) 등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대표적인 골목상권 침해로 비판받은 ‘재벌빵집’ 논란 등은 경제 민주화 여론을 한층 고조시켰다.
한편,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첫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풀어가야 할 과제도 많다. 보수 대 진보로 갈라진 갈등을 해소하고, 대통합의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또한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맞이해 성장률 견인 등의 경제위기 극복 과제 등도 앞에 놓여 있다.


아웃도어 광풍과도 같은 열기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아웃도어는 독야청청 전성시대를 열었다. 국민스포츠로 사랑받는 등산 인구도 나날이 증가했으며, 아웃도어 패션도 이만큼 세련된 나라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웃도어 업계는 2010년도에 이상기후로 인한 트렌드 변화와 함께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한마디로 패션계의 최강자로 아웃도어 브랜드가 등극을 했다. 최고급을 표방하는 제품부터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중저가 제품까지 시장에는 선점을 위한 경쟁이 날로 뜨거워졌다. 특히 다운재킷의 경우에는 제품 단가가 센 편이어서 매출 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매우 커서 가장 치열한 부문이었다. 2009년에는 강추위에 없어서 못 파는 경향이었다.
가격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웃도어 시장은 성장세가 꾸준히 지속되었다. 각 업체들은 등산용으로 국한되었던 제품군을 극한 지역의 탐사용 장비 등 하이엔드(High-End) 시장에서부터 트레킹, 워킹 등과 캐주얼, 아동용 분야까지 확대해 수익을 더욱 늘려나갔다. 즉, 전문 산악인은 물론 10대부터 60대 실버세대까지 선호하는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트레일 코스 열풍에 의해 둘레길 맞춤형 상품도 봇물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등산복으로 ‘대동단결’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걷기 열풍을 타고 워킹화가 시장을 견인하면서 아웃도어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가 정면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2011년에는 10대 청소년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청소년과 함께 여성층의 고객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패션이 가미된 전문성과 기능성은 갈수록 진화를 거듭했다.

<블랙야크 워킹화 광고>


전국 각지에는 캠핑장이 들어서고 오토캠핑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1박 2일’ 등의 리얼 버라이어티 방송프로그램들은 아웃도어 바람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한편, 아웃도어 패딩 제품에 가격별로 계급이 생기는 청소년 문제까지 대두되었다. 2011년 말에 소비자시민의모임이 아웃도어 품질비교 정보를 발표한 이후, 노스페이스는 시민단체와 품질테스트 결과에 대해 공방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국내・외 판매가격 차이 논란과 가격 거품의 논쟁으로 확산되었고, 학교 및 청소년 폭력과 차별화 무리 짓기 현상에 대한 책임론까지 대두되었다.
2011년도 아웃도어 시장은 ‘빅 3’가 새로 재편되었다.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에 이어 블랙야크가 시장점유율 3위 업체로 올라섰다. 일상복으로 자리 잡은 아웃도어 업계에 진출하거나 또는 진출하려는 기업은 매년 많아지고 있다. 2012년에 런칭한 신규 아웃도어 브랜드만 11개가 넘었다. 특히 해외 브랜드의 국내 직접 진출이 많아져 유통 시장에서 브랜드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학생들이 교복처럼 입던 점퍼는 인기가 한풀 꺾였다. 그래도 아웃도어 시장의 열기는 계속 뜨거워 2,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린 브랜드가 이제 8개에 이르렀다.


도전정신과 기록

2010년 4월 27일,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정해 자이언트 14좌 완등을 이뤘다. KBS는 생중계로 현지에서 이 장면들을 전했고, 28일자 주요 신문들은 1면과 종합면, 사설까지 ‘오은선 쾌거’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세계의 거목이 된 오은선 대장은 칸첸중가 등정 시비로 인해 바로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SBS가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일을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오은선 대장은 재등정을 할 수도 있으나, 분명히 올랐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 생방송>

엄홍길 대장은 2010년 9월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한편, 2010년 5월에 네팔 현지에서 소설가 겸 산악저널리스트인 신영철 <사람과 산> 편집주간이 엘리자베스 홀리(Elizabeth Hawley) 여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홀리 여사는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오은선이 자신의 등정을 믿듯 나도 100% 그의 등정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오은선은 불쌍한 여자다. 믿을 수 없는 위업을 이뤄냈으나 제대로 평가를 받기도 전에 상처부터 입었다.”고 말했다.

<오은선 대장이 인류 최초 14좌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인터뷰하는 모습>


공개된 인터뷰는 신영철 주간이 펴낸 <오르는 자의 꿈>이라는 저서에 실렸다. 홀리 여사는 “이해 당사자인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이 14좌 마지막 봉인 시샤팡마를 끝내고 찾아와 내 기록에서 자신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자로 고쳐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은선의 등반을 의심하지 않지만 논란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맞기에 나는 그를 등정자로 기록함과 동시에 논쟁 중이라는 점도 명시했다.”라며 “파사반과 한국의 일부 산악인이 오은선의 등정을 부정하고 있지만, 미등정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이 논란은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홀리 여사는 “이와 관련해 한국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으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서로 다른 답변이 왔다.”며 안타까워했다. 홀리 여사는 미국 출신으로 1960년에 네팔로 건너온 로이터통신의 특파원이었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미국 원정대의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한 이래로 네팔에 계속 상주하면서 인류의 히말라야 등반 기록을 쓰고 있다.
한편, 스페인의 파사반은 2010년 5월 18일에 시샤팡마를 올라 14좌 완등을 해냈다. 파사반은 10년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자신의 기록이 세계 최초의 여성 기록으로 남길 바랬다.
2011년 4월 26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김재수 대장이 14좌 완등의 대업을 완성했다. 마침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는 1990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부터 1999년까지 고산등반을 했다. 이후 고산등반에서 발을 뺐는데, 2007년에 고미영을 만나면서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고미영의 꿈을 돕는 등반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기록도 자연스럽게 늘려가게 되었다. 2009년 고미영이 추락사하면서 그의 등반은 다시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고미영과의 14좌 완성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다시 히말라야로 향했던 것이다.

김재수 대장이 14좌 완등의 대기록을 세워 한국 산악계의 저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김재수는 무려 20년 만에 완등의 기록을 세웠다. 세계 27번째 완등이었으며, 이제 한국과 이탈리아가 완등자 4명씩을 보유하게 되었고, 오은선의 등정까지 합치면 다섯 명으로 가장 많게 되었다.
2011년 9월에는 장애산악인 김홍빈이 초오유 정상에 우뚝 서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런데 10~11월에는 박영석 대장을 비롯해 산악인 다섯 명을 잃고 말았다. 박영석 대장은 2001년에 K2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의 대위업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2003년에는 남극, 2005년에는 북극점을 도보로 도달해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불세출의 산악인이었다. 이후 그는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새로 개척했고, 2010년 3월 (사)박영석탐험재단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을 쏟다가,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에서 그만 산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2011년에는 부산시산악연맹의 다이내믹희망원정대가 14좌 완등을 이룩했다. 2006년 봄부터 2011년 9월까지 8,000m급 모두를 등정했다. 5년 4개월의 최단기간 성공이었다. 14좌 원정에 참여한 산악인은 모두 17명이었다. 오직 단 한 번의 실패로 성공률 또한 최고 수준이었다. 홍보성 대장의 지휘 아래 김창호가 13좌, 서성호가 12좌의 기록을 세웠다. ‘다이내믹부산(Dynamic Busan)’이란 부산시의 슬로건을 걸고 ‘희망 8,000’이란 프로젝트로 시작된 일이었다.
양과 질이 고루 발전하는 시대
2010년 2월 루마니아 부스테니(Busteni)에서 개최된 제4차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대회에서 박희용과 신윤선이 남녀 우승을 차지했다. 남녀 동반우승은 세계 최초였다. 세계 스포츠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11년 제1차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대회는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역사적인 일이었다. 물론 아시아 최초의 개최이기도 했다. 25개 나라에서 총 119명의 선수가 참가했으며, 한국은 남녀 모두 결승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속도 경기의 경우에는 러시아가 싹쓸이를 해버렸다. 이후 박희용은 제2차 대회에서 3위, 제3차에서 1위, 제4차에서 2위를 차지해 종합랭킹 1위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리고 여자부에서는 신윤선이 종합랭킹 3위에 올랐다.
2012년에도 제1차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대회가 한국에서 또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아시아챔피언십이라는 경기를 추가해 아시아의 아이스클라이밍 활성화를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한편, 스포츠클라이밍에서는 리드(Lead, 난이도) 종목에서 한국의 김자인을 필두로 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김자인은 리드월드컵 5경기를 연속으로 우승했다. 2010년도에 리드 여자랭킹 1위, 월드랭킹 1위, 통합랭킹 1위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야말로 세계를 평정했다.

2011년 볼더링월드컵 첫 시리즈에서도 김자인은 우승해 세계대회에서 리드와 볼더링 두 종목을 석권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2011년 종합랭킹은 2위에 올랐다. 2012년 제20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중국 광시성 르예에서 개최되었다. 난이도 경기에서 민현빈, 김자인이 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볼더링에서는 민현빈이 2위를 차지했고, 김자인은 볼더링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2년 5월에 전라남도산악연맹은 목포국제스포츠클라이밍센터를 개장했다. 한국 산악인의 국제 위상 제고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대한산악연맹은 2012년 4월 23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이인정 회장이 대한산악연맹 비전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을 선정해 수상했다. 이후 9월에는 <대한산악연맹 50년사>를 발간했다.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에 뽑힌 영광의 수상자에는 (주)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을 비롯해, 엄홍길, 고미영, 고상돈, 박영석, 심악 이숭녕, 지현옥, 강석호, 권효섭 등이었다.

<2012년 강태선 회장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에 선정>


2010년대를 맞아 이제 등산은 너무나 풍성한 가지를 많이 갖게 되었다. 심신단련, 꽃과 나무 등의 동・식물 애호, 오토캠핑, 종주산행, 트레킹, 암벽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 산악스키, 해외 오지탐험, 명산 트레킹, 고산등반, 거벽등반 등 아주 각양각색의 열매를 맺고 있었다.
특히, 트레킹은 2000년대 말부터 전국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둘레길 등의 개발은 그야말로 열풍이었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 자연탐방길 등 다양한 생태탐방도 각기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산을 소재로 하는 문화예술의 향기도 풍부해졌다. 산악소설에 이어서 산악만화 연재, 스마트폰용 등산애플리케이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해졌다.
이렇게 다양한 등산 및 아웃도어 활동으로 인해 등산장비 및 용품 시장도 엄청나게 커졌다. 세계 시장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공 신화가 번창해졌다. 인터넷 온라인 안에서도 등산의 붐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제 양과 질이 고루 발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