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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YAK HISTORY

산악인과 함께한 46년간의 끊임없는 도전,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로

성공 신화의 나팔소리

가산동시대, 대망을 품다

동진레저는 2005년 11월부터 블랙야크의 슬로건인 ‘DESIGNED BY MOUNTAINEER’라는 문구를 ‘DESIGNED BY MOUNTAINEERS’로 바꾸었다. 2005년도 매출액 400억 원을 돌파한 여세를 몰아 2006년도에는 산보다 더 높은 뜻을 세웠다.
2006년 3월부터는 ‘Premium Outdoor - 블랙야크’로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하면서 정찰가격제를 시행했다. 거품을 제거한 정직한 가격과 더 좋은 품질로 보답하겠다고 고객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마운티아는 ‘Discover mountain utopia’라는 슬로건을 쓰기 시작했다. 이어서 5월에는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블랙야크 그린카드를 도입했다. 회원들에게 구매금액의 5%를 적립시켜주고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6년 3월 10일, 강태선 사장이 한국스카우트서울남부연맹 연맹장에 취임을 했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스카우트와의 인연이 이제는 스카우트운동의 밀알 역할로 발전하게 되었다. 강태선 신임연맹장은 “스카우트의 심부름꾼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2002년에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무궁화 금장을 수여받은 바도 있었다. 동진레저는 사업을 경영하면서 한 계단 높이 뛰는데 도움을 받았고, 또 스카우트는 좋은 수품을 공급받아 청소년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 이후 한국스카우트지원재단에서 직영으로 관장하게 되면서 약 23년 동안 해오던 공식대행업체는 그만하게 되었다.

한편, 동진레저는 2006년 6월 11일에 본사를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60-11 스타밸리 3층으로 이전했다. 새로운 사옥은 가산디지털단지역과 가까운 위치였다. 동진레저는 창립 33주년을 맞아 새로운 사옥을 마련하는 뜻깊은 해를 맞이했다. 기존의 본사였던 압구정 건물은 사세가 나날이 커지면서 공간이 협소해졌다. 그동안 영업부와 기획실 등 흩어져 있던 조직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등산 소재와 등산용품 개발부서인 부설연구소도 신사옥에 합류하게 되었다.
동진레저는 스타밸리 3층 전체와 1층의 매장을 분양받았다. 사옥의 전체 공간은 600여 평에 달했다. 좋은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200여 평 규모의 직원휴게실, 판매사원 및 내부직원 교육을 위한 세미나실, 여성전용 휴게실 등 다양한 공간까지도 마련했다. 각 부서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2004년도에 도입한 사내 인트라넷도 새로 구축했다. 이와 동시에 기업의 CI 및 BI 작업을 새롭게 진행시킬 계획을 세웠다.
2006년 7월 20일 오후, 동진레저는 신사옥 입주 기념식을 가졌다. 스타밸리 1층에 있는 40평 규모의 매장인 가산점 앞에서 테이프 커팅식을 거행했다. 약 250여명의 많은 축하객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날 강태선 사장은 생일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기쁨에 넘쳐 있었다.

<2006년 가산동 신사옥 입주 기념식>

<2006년 가산점(직영점) 오픈 테이프 커팅식>


강태선 사장은 입주 기념사에서 “창립 3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옥다운 사옥을 마련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연구소가 제일 자랑거리입니다. 이 연구소를 통해 나온 제품으로 세계 유명 브랜드와 겨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겁니다. 토종 브랜드로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게 꿈입니다. 이번 사옥 이전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 꼭 해내고 말겁니다. 그리고 산악인으로서의 꿈인 매킨리 등정도 이루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진레저는 새로운 웅지를 틀자마자 새로운 기술과 기능성 등을 선보이는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을 시즌을 맞이해 신체 각 부위별로 맞춤 시스템으로 완성된 재킷을 출시했으며, ‘1・2・3 System’을 내놓았다. 1・2・3 System은 각 부위마다 최고의 기능성 소재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전체의 기능을 극대화시킨 지능형 아웃도어였다. 특히 1, 2, 3으로 외피와 내피를 합체시키는 독특한 레이어드(Layered) 시스템이었다. 이너(Innner)와 아우터(Outer)를 각각 따로 입거나, 또는 같이 부착해 착용하는 매우 실용적인 제품을 보여주었다. 고객들은 사계절용으로 각각, 그리고 전천후 보온과 방수, 방풍 등 혹한기 겨울 산행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일이었다. 이외에도 최고급 소재 적용과 초경량 소재 사용 등의 강점까지도 지녔다.
한편, 국내 아웃도어 업계는 한-미가 주도했는데, 여기에 유럽까지 새로 가세를 했다. 한・미・유럽의 브랜드 삼국지가 펼쳐졌던 셈이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의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품도 고가-중저가로 나뉘어졌다. 경기침체 속에서 시장이 양분화 되는 형상을 보였다. 블랙야크는 아직 선두권을 쫓아가는 입장이라 더 높은 이미지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도 블랙야크의 영업망은 한층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직영점이 가산동본점 등 3개, 대리점은 116개, 백화점은 14개였다. 강태선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시장 확대를 위한 교두보 마련에 여념이 없었다. 마운티아의 경우에는 롯데마트에 38개, 홈플러스에 7개, 그리고 이마트에 1개, 농협하나로마트에 2개를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마운티아는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면서 대형할인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6년도 동진레저의 매출액은 496억 8,260만 원으로 전년도보다 20.9% 성장을 했다. 영업이익은 33억 729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180.2%나 폭증했다. 당기순이익 역시도 23억 5,424만 원으로 전년대비 53.8%의 가파른 상승세였다. 동진레저는 2006년 12월 29일에 자본금을 13억 6,620만 원에서 18억 7,224만 원으로 늘렸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다

동진레저는 2007년 1월 1일 새해맞이 기념 산행으로 희망찬 새해를 열었다. 1월 한 달 동안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어 등산객이 급증했고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2007년 2월 동진레저는 조직을 사업부제로 전면 개편했다. 블랙야크사업본부와 마운티아사업본부로 구분을 하고, 브랜드별, 기능별로 조직을 세분화시키면서 분권적인 관리 조직으로 변모했다.

<동진레저 전 직원 새해맞이 일출 산행(강원도 오대산)>

이제부터 자재 구입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사업본부단위에서 일관되게 처리하도록 했다. 또한 사업부별로 이익 목표를 부여하고 그 달성도에 따라 업적을 평가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동시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블랙야크사업본부는 김재일 이사, 마운티아사업본부는 김정 이사를 각각 승진 발령했다.
그리고 블랙야크는 회원멤버십카드 제도를 등급제로 변경했다. 2005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던 그린카드 멤버십 제도를 누적 마일리지 금액에 따라 일반회원, 실버회원, 골드회원으로 구분해 각 등급에 따라 별도의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였다. 그동안 별도의 구분 없이 구매금액의 5%를 적립하던 것을 5% 적립과 함께 5% 할인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단골 고객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 위함이었다.

<블랙야크 그린카드>

회원을 위한 마케팅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2007년 9월부터 그린카드 회원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블랙야크 데이’를 신설했다. 매주 수요일에 한해서 제품을 구매한 고객 혹은 신규 회원으로 가입한 고객에게 매월 각기 다른 품목의 사은품을 증정했다. 전국 60개의 명산과 산 주변의 음식점, 상세한 교통과 숙박 등의 안내도가 첨가된 지도첩을 첫 사은품으로 준비했다.
한편, 동진레저는 2007년 2월부터 업계 최초로 주부를 대상으로 한 블랙야크 제1기 주부 품질평가단(모니터요원)을 모집했다. 기존의 모니터 제도와는 달리, 상품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선호하는 색상과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생산된 제품에 대한 품질평가와 매장에 대한 암행 관찰의 역할까지 맡기기로 했다.
마침내, 6월 12일 제1기 주부 품질평가단(모니터요원) 발대식이 개최되었다. 약 1,000명의 고객들이 지원해 총 35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매달 교통비와 활동비를 지급받으면서 1년 동안 상품과 서비스 개선을 위한 평가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제1기 주부 모니터요원 발대식>


강태선 사장은 “고객 중심의 맞춤경영만이 기업의 가치를 제고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발대식을 기점으로 해 소비자와의 상호 유대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남성 중심의 아웃도어 시장에서 여성 소비 인구가 늘어나는 최근의 시장 변화에 발맞춰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2007년 1월, 마운티아는 심벌마크와 로고를 리뉴얼했다. 이니셜 ‘M’을 활용해 산의 형상을 쉽게 연상시키도록 했으며, 친근하고 부드러운 형태와 젊고 활기찬 느낌의 오렌지 컬러를 적용시켰다.

<마운티아 BI 리뉴얼 광고>

‘해발 8,000m, 체감온도 -30도, 강풍속도 50m/s, 히말라야, 최악의 환경조건이 블랙야크의 기준이다.’
블랙야크는 2007년 9월 최첨단 원단인 고어텍스 퍼포먼스쉘(GORE-TEX Performance Shell)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렇게 전문 산악인을 위한 최고의 제품을 가을 시즌부터 별도의 라인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바로 익스트림 피크(Extreme-Peak) 라인이 탄생했던 것이다.


<익스트림피크 라인 로고>



익스트림 피크는 등반 시에 일어날 수 있는 극한 상황과 악천후에 대비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블랙야크의 최고 전문가 라인으로 고기능성 소재를 사용했고 다수의 필드테스트를 통해 완성되었다. 가벼우면서도 방수와 투습 기능이 우수한 고어텍스 프로쉘(GORE-TEX Pro Shell) 소재도 적용했다. 3M 제품의 반사체를 달아 야간산행에서도 식별이 용이하도록 제작되었고, 지퍼와 스냅으로 발목 부위의 방수 기능까지 강화시켰다. 기존의 등산복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소재와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카리모어와 아우트로의 출발

동진레저는 한때 수입 브랜드의 천국이었다.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20여 개가 넘었던 시절에는 세계 명품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동진레저였다. 아웃도어 열풍으로 인해 국내에 직접 진출하거나 대기업과 손을 잡거나 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계속해서 수입 및 공급 등을 이어나가고 싶은 몇몇 브랜드들이 있었다. 제품력과 기술력이 있는 브랜드만으로 사업할 별도의 법인을 설립키로 방침을 정했다.
2007년 7월 11일, 동진레저는 무역부를 독립시켜 별도의 법인인 ‘주식회사 아우트로(Outro)’를 설립했다. 설립 자본금은 1억 원이었으며, 압구정 옛 본사인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50-17에 입주했다. 아우트로의 의미는 ‘Outdoor+Metro’를 합친 뜻이었다. 등산복 위주의 아웃도어와 도시의 일상복인 메트로를 합쳐 등산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파고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마모트, 발란드레, 아이스브레이커 등 해외 브랜드와 함께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법인이 설립되자마자 마모트는 대리점 모집에 들어갔다.

<아우트로 마모트 대리점 모집 광고>

동진레저는 2007년 10월부터 영국의 유명한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인 카리모어(Karrimor)를 국내에 수입 공급하기 시작했다. 카리모어는 1946년 찰스(Charles)와 매리 퍼슨스(Marry Persons)에 의해 설립되었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을 연상시키는 심벌마크로 오랜 세월 영국의 자부심이었던 명품 브랜드였다. 강태선 사장은 “카리모어는 기능성을 제대로 갖추면서도 동시에 초경량성을 충족시키는 세계적인 브랜드이다.”라고 밝혔다.
영국 랭커셔(Lancashire)에서 수제 사이클 백 제조로 사업을 시작했다. 기능적이면서도 내구성 있는 사이클 백의 명성은 곧 전문 클라이머들에게 알려졌다. 1957년 카리모어는 전문 등반가인 지미 로스트론(Jimmy Rostron), 데이브 토마스(Dave Thomas)와 손잡고 등산용 배낭을 출시했다. 이후 카리모어는 영국의 배낭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카리모어 배낭은 기능성과 내구성을 살리면서도 몸과 밀착되는 편안한 착용감과 함께 초경량으로 유명했다. 배낭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와 재질이 원래 고안된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무게를 더하지 않도록 조합되어 전문 산악인들의 각광을 받았다.

<2007년 카리모어 ‘이것이 나의 프라이드다’ 광고>


카리모어는 1980년대부터 제품 라인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아웃도어와 신발, 의류와 용품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대응할 수 있는 라인업을 갖추었다. 또한 신발 최초로 가죽 소재 대신에 초경량 원단을 사용한 신발을 출시했고, 이는 등산화 시장에 대변혁의 신호탄이었으며, 보다 전문화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카리모어가 충족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카리모어는 국내에서 우선 대형할인점부터 유통되기 시작했다. 마운티아는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를, 카리모어는 이마트를 파고들었다. 동진레저는 카리모어사업본부를 출발시켰으며, ‘Karrimor Pride’, ‘이것이 나의 프라이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동진레저는 2007년도에는 전진의 나팔소리가 대단했다. 총매출액이 721억 3,794만 원으로 전년대비 45.2% 성장이라는 성공 신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영업이익도 역시 50억 3,259만 원으로 전년대비 52.2% 급증했으며, 당기순이익도 31억 7,462만 원으로 34.8%의 높은 신장세를 나타냈다. 매년 상승 추세는 거침이 없었다. 또한 2007년 12월 29일에는 자본금을 18억 7,224만 원에서 28억 8,298만 원으로 크게 확충했다.

2007년에는 직원 교육에도 특별한 행사가 많이 곁들여졌다. 2007년 4월에는 전 직원이 지리산을 무박 2일로 산행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어서 6월 30일에는 북한산에서 ‘한마음 등반대회’를 개최했다. 상반기를 마감하고 하반기를 대비하기 위한 행사였다. 산행 도중에 쓰레기 줍기, 등산객들의 착장 조사, 블랙야크 제품 직접 착용 후 사용 후기 등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등반과 제품을 스스로 이해하면서 만드는 사풍 조성을 위해 애썼던 셈이다.
또한 이색적인 이벤트를 준비해 고객에게 다가가기도 했다. 동진레저는 2007년 12월 9일 서울의 도봉산에서 ‘제주감귤 무료증정 행사’를 개최했다. 제주시농협과 함께 제주감귤을 홍보하고, 등반객들의 피로와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제주감귤은 2.5톤 트럭으로 10대 분량을 준비했다. 약 10만 개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제주가 고향인 강태선 사장은 제주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제주감귤과 블랙야크를 알렸다.

<2007년 도봉산 제주감귤 무료증정 행사>


2007년 12월 26일, 제56회 ‘2007 서울특별시 문화상’ 시상식에서 동진레저 강태선 사장이 체육 분야 문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강태선 사장은 전문 산악인으로서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장을 맡아 성공적인 정상 등정을 이끌어 국위 선양과 한국인의 기상을 알렸고, 국내 최초로 3년 연속 국제볼더링선수권대회를 유치해 사회체육 분야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8회째 열리고 있는 서울시 청소년(초, 중, 고)스포츠클라이밍대회를 매년 후원해 청소년의 도전정신과 체력 함양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2007년 12월 서울특별시 문화상 시상식>


산으로 번 돈은 산으로

강태선 사장은 2007년 한 해 동안 대리점 개설과 관리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각 지역별로 직접 돌아다니면서 대리점 사장들과 만나고 영업 및 매출 신장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댔다. 특이한 점은 해당 지역을 돌기 위해 지방출장을 다니면 보통 호텔이나 숙박업소를 잡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그는 대리점 사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의 이런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대리점 사장들은 믿음이 더욱 갔고,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또한 강태선 사장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힐 수도 있었다.

한편, 강태선 사장은 1990년대 말에 남북경협 사업을 통해 북한 산하를 가보고 싶었는데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다가 금강산 관광으로 어느 정도의 소원을 풀었다. 그런데 북한 땅을 깊숙이 밟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1992년부터 전국자연보호중앙회 명예총재로 선임되면서 자연보호 활동을 계속 지원해왔다. 그런데 이 단체가 북한 평양 단군릉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 운동은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북한의 단군민족통일연합회에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기관이 주최를 하고 블랙야크가 제반 비용을 부담 및 후원하기로 했다. 단군릉은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함박산에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에 단군릉 발굴을 공식 발표한 이후, 단군릉복구위원회를 조직해 단군릉을 조성했는데, 그 주변에 나무 하나 제대로 심을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면 흙이 전부 쓸려 내려가는 실정이었다.

<강태선 사장 북한 방문>


강태선 사장은 북한을 방문해 그 실태를 살펴보고 나무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파괴된 산을 복원해서 자연재해를 줄이고, 산림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미력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돈이나 쌀을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산을 통해 번 돈을 산을 살리는 데 환원하는 건 당연합니다.”라고 말했다.
2007년 5월 초, 드디어 그는 평양으로 들어가 ‘제1회 단군릉 나무심기운동’ 행사에 참가했다. 그는 나무에 식수 기념으로 명찰 100개를 가져가 걸려고 했는데, 북한 안내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하나씩 깨보기 시작했다. 결국 달랑 3개만 걸 수밖에 없었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강태선 명예총재 2007년 5월 식목 기념’이라는 명찰은 바로 눈앞에서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가 따가우면서도 매우 안타까웠다. 이날 단군릉 주변에는 잣나무 묘목 1만 그루가 푸르게 심어졌다.
이 단군릉 나무심기운동은 2008년에 한 번 더 개최되었으나,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중단되었다.

<제1회 단군릉 나무심기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