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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YAK HISTORY

산악인과 함께한 46년간의 끊임없는 도전,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로

명품을 만드는 강소기업

세계와의 교류로 길을 닦다

강태선 사장은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으로 일하면서 해외와의 많은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런 교류는 동진레저의 멀리 내다보는 큰 꿈을 생각하면 도움이 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겠다. 세계로의 진출, 글로벌 브랜드라는 원대한 포부를 향해 사전 정지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한다면, 산악계의 발전과 산악단체의 활동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더욱 값지고 보람된 일일 것이다.
2000년 2월 14일, 서울시산악연맹으로 옌벤(延邊)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옌벤조선족자치주등산협회의 주석이 상호 교류를 희망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강태선 연맹 회장은 즉시 답신을 보내고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 이후 초청을 하여 10월 5일 옌벤의 조선족 산악인 5명이 방한했다. 동포들끼리 소중한 교류의 물꼬를 처음으로 텄던 셈이다.
이를 계기로 2001년 6월 강태선 회장은 서울시산악연맹 산하의 가맹산악회 회원 102명을 이끌고 나갔다. 목적지는 바로 백두산이었다. 한국의 산악인과 같은 동포인 옌벤 조선족 산악인 모두는 감격스럽게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중국등산협회와의 교류에 이어 옌벤까지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강태선 회장 일행의 방문은 옌벤일보에도 실렸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산을 오르면서 산처럼 살아가는 지혜와 겸손과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민족의 단합성과 친선을 돈독히 하자고 강조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른 강태선 사장>


2002년에는 미국에까지 손을 뻗었다. 재미산악연맹과 함께 교류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2002년 5월 2일 한국의 산악인 12명이 미국을 향했다.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Sierra Nevada Range)에 있는 본토 최고봉 휘트니(Whitney, 4,417m)를 등정했다. 재미산악연맹이 2001년 6월부터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실시중인 50개 주의 최고봉 등정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18시간에 걸쳐 산행하여 강태선 회장을 비롯해 8명이 정상을 밟았다. 휘트니 등정 기록으로는 최대 인원 동시 등정의 기록을 남겼다.

<휘트니봉 정상에 선 강태선 사장>


산악인들의 꿈이자 은둔의 땅인 티베트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강태선 회장은 2001년 티베트등산협회(T.M.A.) 부주석 일행을 초청해 만남을 가졌다. 한국 산악운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걸었던 셈이다. 강태선 회장은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산을 단순히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최근 산악운동의 흐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 세계인이 향유할 자연유산으로서의 히말라야를 보호하는 방향에서 산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포부를 그들에게 밝혔다.
2002년 6월, 티베트등산협회의 초청을 받고 강태선 회장은 수도 라싸(Lasa)로 날아갔다. 서울시산악연맹과의 상호 교류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돌아왔고, 석 달뒤에는 서울에서 티베트등산협회와 우호결연 협정을 체결했다. 이런 티베트와의 교류 덕분에 2003년 5월에는 서울・티베트 합동 에베레스트원정대가 꾸려져 총 10명이 세계 최고의 봉우리에 올랐다.

<서울시산악연맹과 티베트등산협회 자매결연>


한편, 2003년 6월에는 블랙야크의 상표가 일본에 정식으로 등록되었다.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미래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뒤이어 8월에는 전년도에 출원했던 마운티아 상표가 특허청에 등록되었어, 2003년 1월부터 마운티아는 ‘Ultimate Outdoor Wear from Nature’의 슬로건으로 광고를 집행했다. 다음 달부터는 ‘from Nature’로 보다 간결하게 바꾸었다.
이렇게 경영자의 수많은 외부 활동에도 불구하고 동진레저의 항해는 쾌속항진이었다. 2003년 동진레저의 총매출은 194억 4,927만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57.6% 성장이라는 놀라운 금자탑을 또다시 쌓아올렸다. 영업이익은 5억 6,652만 원으로 무려 60.7% 상승했으며, 당기순이익은 3억 1,206만 원으로 73.7%라는 기록을 낳았다. 매년 상승 그래프는 가파르게 그려졌던 셈이다. 창립 30주년인 해에 놀라운 성과를 기록해 그 의미 또한 남달랐다. ‘30년을 한결같이 산을 꿈꾼다.’라는 30주년 기념광고와 엠블럼이 더욱 빛나보였다.

<동진레저 30주년 기념 엠블럼>


만리장성을 내가 지키냐, 네가 지키냐

강태선 사장은 주위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중국 땅에 첫 발을 디뎠다. 중국에 공장 설치와 재설치를 반복하면서 1998년 1월부터는 등산장비 전문점인 풍우설(風雨雪)을 운영했다. ‘바람, 비, 눈’ 등 악천후를 무릅쓰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기개를 상징하는 풍우설은 업계 최초의 글로벌 전초기지였다.
강태선 사장은 중국이 히말라야 등정을 위해 외국인 원정대가 모여드는 곳이라, 전문장비에 대한 요구가 어느 곳보다 큰 곳임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그동안 산악계 일로 많이 쌓은 교류는 그 나라의 문화와 습성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공부가 되었고, 또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중국 시장 공략에는 점점 속도가 붙었다. 2000년부터는 여러 백화점에도 입점을 시키면서 잦은 왕래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유명한 산악인을 만나게되었다. 그는 바로 영국인 윌리엄 린드세이(William Lindesay)였다. 그는 만리장성을 두 발로 완주한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칭송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800일 이상 만리장성을 걸으면서 부서지고 망가진 만리장성이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만리장성 애호가협회(International Friends Of The Great Wall)를 창설하여 보존 활동에 앞장서고 만리장성 쓰레기 줍기 운동 등을 벌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태선 사장은 환경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보았던 만리장성도 허물어져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존과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해있는 동진레저가 중국을 위한 사회사업으로 동참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린드세이는 너무나 반가워했다. 이렇게 해서 블랙야크는 2002년 5월부터 만리장성 환경보호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지원을 받게 된 린드세이 역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되었다.

<만리장성 애호가협회 월리암 린드세이>


만리장성은 블랙야크가 지킨다.

우선 블랙야크는 환경보호 캠페인 광고를 집행했다. 그 어느 외국기업도 감히 하지 못했던 광고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만리장성 지키기 캠페인은 충격에 가까웠다. 환경보호 의식이 미약했던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블랙야크가 행동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의 문화재관련 당국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중국의 높은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항의와 함께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어버렸다. 강태선 사장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니들이 뭔데 감히 만리장성을 지킨다는 것이냐. 그래서 우리는 형제 나라와도 같으니 만리장성을 함께 지키자고 대변했죠. 결국 ‘블랙야크가’ 아닌 ‘블랙야크도’ 만리장성을 지킨다는 내용으로 광고카피를 수정했더니, 중국인들의 호응도가 더욱 좋아졌죠. 토씨를 하나만 바꿨는데 중국인의 마음을 사게 된 경우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리장성에 쓰레기통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1,000개를 사서 만리장성 곳곳에 갖다놓았더니 블랙야크의 이미지가 상당히 제고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 11월 12일, 블랙야크 만리장성용 대형 쓰레기통 설치 전수식이 개최되었다. 이날 처음으로 설치된 쓰레기통은 30개였다. 그리고 ‘만리장성을 지키는 친구들’이라는 환경단체에 등산용품 제공 등의 협찬도 시행했다. 자연스럽게 중국 등산객들에게 ‘블랙야크’의 이름이 알려졌다. 중국의 문화재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전문 산악인들은 블랙야크에게 찬사를 보내주었다.

 

 

<만리장성 대형 쓰레기통 설치 전수식>


한편, 블랙야크는 2003년 4월 베이징 사이터백화점에 입점하였고, 뒤이어 6월 19일에는 북경 블랙야크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명은 북경포래아극호외운동용품유한공사이다. 현지에 법인이 설립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 폭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으며, 중국 현지에서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고품질의 원부자재는 한국에서 공수를 했다.
2004년 5월 29일 동진레저는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4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에 참가했다. 중국의 국제 규모 행사에 최초로 참가했으며, 이후 중국 내에서 백화점 입점을 계속 늘려나갔다.

 

<2004년 상하이 제14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


2005년에는 중국 내에서 고어텍스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제 중국 시장에서도 고어텍스를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등산장비의 격을 크게 높이는 일이었다. 이로써 세계의 고산을 하나씩 올랐듯이 중국의 유통망을 정상에 올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런저런 자랑거리가 많은데도 그는 ‘중국에서 동진레저의

성공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적은데다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신고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중국의

등산용품 시장은 아직 한밤중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본다.”
- 매일경제신문 2004년 12월 6일 기사 중에서-


중국의 등산전문지 <산예(山野)>는 등산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블랙야크를 선정하기도 했다. 북경 블랙야크 법인의 2004년도 매출액은 1,000만 위안(약 15억 원)에 불과했지만, 소득 증대와 함께 아웃도어 시장이 연평균 4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성장 가능성은 무한한 상태였다. 어느새 베이징의 백화점에도 9곳이나 입성을 했다. 당시 등산을 포함한 중국의 아웃도어 인구는 약 4,600만 명이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종로의 2평짜리 점포에서 시작된 창업의 꿈은 이제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를 호령할 길을 걷게 되었다.
아웃도어 돌풍의 중심세력으로 몰아친 동진레저는 2004년도 매출액을 총 326억 9,239만 원을 올려 전년대비 68.1%의 놀라운 성적표를 또다시 거머쥐었다. 놀라운 신화는 새로운 신화를 향하고 있었다. 영업이익의 경우에는 9억 2,191만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62.7%의 폭증을, 당기순이익은 7억 4,602만 원으로 지난해 보다 무려 139%라는 경이로운 신기록을 작성했다. 기업의 재무구조도 훨씬 단단해졌으며, 2004년 12월 14일에는 자본금을 8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증대시켰다. 특히 강태선 사장은 2004년 3월 31일에 영예롭게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여받아 보람찬 한 해이기도 했다.


강소기업으로 거듭나다

2004년에 아웃도어 시장은 또다시 출혈경쟁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봄철을 맞아 저가의 기획상품 바람이 불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대형유통업계끼리의 아웃도어 상품 특가판매 싸움이 근본 원인이었다. 유통업계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이 때문에 시중에는 저가로 기획된 상품의 물량이 크게 늘었다. 대형유통업계에 매장을 두는 입장인 생산 및 판매업체는 수익성이 악화되어도 행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동진레저 역시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장기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대형유통업계에서 경쟁적으로 기획하는 ‘가격파괴, 초특가, 덤, 1+1, 10년 전 가격, 반값’ 등의 추세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저가에 입맛을 들인 소비자는 가격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비자 욕구에 따라 가두시장 등의 유통 채널도 세일의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기획물은 값이 싸서 판매가 잘되었고, 업체들은 너도나도 기획상품을 늘리는 악순환 구조였다.
롯데마트에 입점한 마운티아의 경우에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월간 판매실적 1위에 오르는 등 선전을 펼쳤다.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을 모두 버리지 않는 지독한 고집, 이를 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상품기획과 도전, 영업과 마케팅의 우직스러운 열정과 패기는 고속 성장으로 이어졌다.
마운티아는 2004년부터 홈플러스에도 입점을 했다. 어느덧 업계의 사람들은 마운티아를 ‘마트의 명품’ 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남보다 앞선 기능성 원단 등의 소재와 새롭게 선보이는 패션과 디자인은 호소력이 강했다. 또한 같은 값이면 더 좋은 물건을 찾는 소비 심리를 적중시켰다.

 

<마운티아 2003년 제품광고>


실제, 대형할인점의 여름 시즌을 겨냥한 특별기획행사 때에는 좋은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업체끼리 몸싸움을 할 정도로 치열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럴 때, 동진레저의 영업맨들은 밀리지 않는 단결력으로 이를 헤쳐나가 상대방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충성 조직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때로는 이렇게 업체끼리 싸우기도 했으나, 서로 만나 술 한 잔을 권하면서 감정을 씻어내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한편, 블랙야크는 2004년 5월 25일 현대백화점 광주점에 입점을 했다. 8월 5일에는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에 입점하였고, 12월에는 GS백화점 안산점에도 입점했다. 이제 블랙야크는 유통시장에서 손색없는 명품의 대접을 받게 되었고 동진레저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소기업이 아니라 강소기업으로 보기 시작했다. 강한 기업, 전투력이 대단한 영업을 펼치는 직원들, 사세의 놀라운 기상은 상대를 압박했다.
블랙야크는 아주 획기적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2005년 3월 26일 제1회 블랙야크배 국제볼더링선수권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대회 명칭에 브랜드 이름을 사용할 정도로 발전했다. 기존과 다르게 볼더링대회를 개최한 일은 신선한 바람이었으며, 첫 대회부터 국제대회로 격상시킨 것도 대단한 성과였다. 해외 선수들을 직접 초청해 국내 선수들과 경쟁을 벌이도록 했다. 대회 결과 손상원과 고등학생에 불과한 김자인이 남・녀부 1위를 모두 차지했다.
강태선 사장은 “스포츠클라이밍의 난이도와 속도 부문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시아권에서는 정상급의 실력을 갖고 있지만, 국내에서 주최하는 국제대회가 없어 발전 속도가 더딘 측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볼더링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우리가 먼저 국제대회를 개최해 외국의 선수들과 경쟁해 기량 향상과 저변 확대를 꾀하지 않으면, 답보상태에 머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대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 9월 1일, 시청자들은 TV를 보면서 화면으로 블랙야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동진레저는 창립 33년 만에 TV CF를 처음으로 방영했다. 지상파를 통해서 전 국민에게 홍보의 돛을 펼쳤다. 전문 산악인과 등산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영업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적극적인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던 것이다.


“최고의 등반기술은 살아남는 것이다. 최고의 등산제품은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정상에 오른 사람. 그 사람이 산보다 위대하다. 사람이 산이다! 블랙야크.”

<사람이 산이다 TV CF 광고>


K2로 유명한 중견업체 K2코리아도 다음 달부터 TV 광고를 시작했다. 뒤이어 토종이면서 대기업인 FnC코오롱도 10월부터 코오롱스포츠 브랜드의 공중파 TV 광고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3파전이 TV에서 벌어지게끔 되었다. 중소기업에서 강소기업으로 거듭난 동진레저는 어느새 순수 토종 브랜드인 블랙야크를 명실상부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해외 명품에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 자신감과 실력으로 동진레저는 “사람이 산이다! 블랙야크.”라는 강한 여운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전달했다.


제2의 창업 정신으로

2004년 5월 29일, 동진레저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4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에 참가했다. 중국의 국제 규모 전시회에 처음 참가한 것이었다. 다음해에 동진레저는 또다시 중국의 국제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5년 6월 20일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5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에 국내 유일이자 대규모로 부스를 설치했다.
외국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중국 내에 등산장비 1호점을 연 회사다운 행보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블랙야크 고어텍스 의류가 아웃도어 부문에서 판매 인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005년 상하이 제15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 판매인기상 수상>

<2005년 6월 상하이 제15회 국제체육용품박람회>


평소에 강태선 사장은 세계 여러 나라의 아웃도어 전시회장을 일부러라도 찾아다녔다. 전시회에서 처음 보는 원단이나 기능이 있으면 꼭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해서 블랙야크만의 독특한 원단과 기능을 찾아서 들여왔다. 그런 원단으로 만들어진 제품 샘플은 직접 입어보고 각종 테스트를 해보았다. 이것이 소비자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비결 중에 하나이다. 산악인을 위한 제품은 그렇게 산악인이 만드는 것이다. 테스트 결과가 좋은 소재와 기능은 대폭 늘리는 동시에, 다른 소재 개발에도 참고 및 응용을 했다.
국내 등산장비 업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세대 현역 경영인이자 산악인인 강태선 사장은 웅대한 꿈이 있었다. 그는 “제2의 창업정신으로 2006년 하반기까지 최소한 100개의 유통망을 구축해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정 정도의 규모를 갖춰야 전 세계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온 동진레저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51개의 유통망을 확보했다. 베이징의 연사백화점과 사이터백화점, 상하이백화점 등 유명 백화점에 직영점을 설치했고 고급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만리장성 환경보호 캠페인 등으로 블랙야크의 이미지는 갈수록 제고되고 있었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시내에서 가장 좋은 백화점 가운데 하나라는 ‘연사백화점’을 찾았다. 우리나라 백화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족 가이드는 “이곳은 비싼 물건이 많아 외국인이나 대부자들이 찾는 특급 백화점”이라고 설명했다.


<상해 블랙야크 유통망 확대>

“베이징 중심가인 장안거리의 ‘사이터백화점’에서는 ‘쿠쿠’ 전기밥솥과

‘무구’ 공기청정기, ‘블랙야크’ 등산복, 밀폐용기 ‘락앤락’ 등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들이 선전하고 있었다.”
- 주간경향 2005년 6월 3일 기사 중에서-


한편, 강태선 사장은 “막대한 시장이 있고 제조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중국에서 나이키, 리복과도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분명 나올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또한 “동진레저는 13년 동안 중국 시장을 공략해오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도 얻었다. 한국의 이월상품이나 저가상품 등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 백전백패이다. 첨단 고가제품으로 중국대륙을 세분화하는 공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동진레저는 가급적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접근하는 역발상의 독특한 경영을 펼쳐나갔다.
동진레저는 가격 승부가 아닌, 전문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디자인 개발로 정면승부의 전략을 선택했다. 다른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것과 달리, 2004년 말부터 중국 공장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규모를 대폭 감축시켰다. 남들과 다르게 거꾸로 길을 걸었다. 중국에는 샘플실과 디자인 기능 등을 위주로 남겨두었다. 부품 및 소재에도 중국산을 쓰지 않는 명품을 위한 ‘고집경영’을 펼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품질 제일주의일 것이다. 오로지 외길을 걸으면서 등산용품 시장의 온갖 굴곡을 넘어 신화가 된 밑거름은 이런 본질에서 시작되었다.
강태선 사장은 박람회 행사를 마친 뒤에 중국 내 백화점들을 방문하면서 현지 점검에 들어갔다. 그의 강행군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수반했다. 같이 수행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토가 나올’ 만큼 힘든 일정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의 강철 같은 체력은 젊은 직원들을 항상 능가했다. 히말라야 등의 고산등반과 평상시 산행으로 다져진 산사람은 그렇게 중국대륙을 두루 누볐다.
블랙야크는 중국 아웃도어자료 사이트인 아웃도어시대(戶外時代)로부터 2005년 아웃도어 시장조사에서 중국 10대 아웃도어 브랜드에 선정되었고, 중국, 아웃도어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터넷 사이트인 뤼예(綠野)로부터 2005년 중국 아웃도어 산업에서 가장 신뢰 있는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2005년 중국 내 10대 아웃도어 브랜드에 선정>

 


 

내가 만든 것이 명품이다

1990년대 말부터 아웃도어 업체가 나날이 늘어만 갔다. 2000년대 초반을 지나자 폭발적으로 커진 시장에서는 기존 업체와 새로 진입하는 기업들이 사투를 벌였다. 한편, 시장에서 구매력 있는 세력으로 등장한 여성 등산객은 증가 추세였다. 패션과 감각에 예민한 여성 소비자를 위해 제품을 기획・개발하고, 마케팅과 홍보, 그리고 사후 모니터링까지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점이었다.
동진레저는 시장의 미세한 흐름과 변화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 및 대처해왔다. 역시 승부는 신제품 출시였다.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기능성에 더욱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이런 목적으로 동진레저는 2005년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매출의 10% 가까이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의지는 강력했으며, 독특한 블랙야크만의 패션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둥을 세웠다. 다른 기업보다 앞선 제품 개발력, 디자인 차별성은 명품의 지위에 꼭 필수인 부분이기도 했다. 명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히말라야 자이언트 봉우리를 오르는 극한의 도전과 일맥상통했다.

 

“기업에서도 명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등반가들처럼 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해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품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나도 명품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만든 것이 명품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때다.”
- 강태선 사장의 자서전 <정상은 내 가슴에> 중에서-


강태선 사장이 기업 내부에 자체 연구소를 둔 것은 디자인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시장 판세는 디자인으로 결정되리라는 믿음을 바로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디자인은 물론이고, 기능과 품질까지 테스트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

동진레저 부설연구소 현판>

<천의 강도 실험>


TV CF의 사상 첫 방영 등 그 어느 해보다도 마케팅 활동이 활발했던 동진레저의 실적은 고공행진을 이어나갔다. 2005년도 총매출은 410억 8,246만 원으로 전년대비 25.7%의 실적을 거뒀다. 불과 2년 만에 매출규모가 2.1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3.3배나 성장했다. 그리고 영업이익은 11억 8,015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8% 상승하였고, 당기순이익은 15억 3,051만 원으로 무려 105%나 폭증했다.
동진레저는 2005년 12월 9일에 자본금을 10억 원에서 13억 6,620만 원으로 확충했다. 영업채널도 한층 강화되었다. 블랙야크 직영점은 2개로 줄였고, 대리점은 98개로 대폭 늘어났다. 백화점에는 10곳에 입점을 했다. 마운티아의 경우에는 롯데마트의 20개 점포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 20여 개가 넘던 수입 브랜드들은 해가 지날수록 줄여가, 이제는 마모트와 발란드레, 블랙다이아몬드 등 11개 정도만을 남겨두었다. 국내 기업들이 아웃도어에 쉽게 진출하기 위해 수입 브랜드에 달려들어서 손을 놓아버린 경우도 있었고, 직접 국내에 진출하려는 의도 때문에 결별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블랙야크가 누구와 붙어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수준에 올랐기 때문이다. 마모트와 발란드레, 블랙다이아몬드 등의 경우에는 놓치기 아까운 제품들을 보유한 경우라 수입공급원의 자리를 계속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