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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YAK HISTORY

산악인과 함께한 46년간의 끊임없는 도전,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로

질주 본능을 일깨우다

블랙야크 새천년의 꿈

발이 네 개 달린 짐승에게는 날개가 없다. 이런 동물은 신화 속에만 존재하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는 날개가 달린 대신에 발이 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발가락이 세 개뿐이다. 소는 윗니가 없으며, 토끼는 네 발을 가졌지만 앞발이 시원찮다. 발 네 개에 날개까지 달리고, 멋진 뿔에다가 윗니까지 모두 갖춘 동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잘 달리는 놈에게서는 날개를 빼앗고, 잘 나는 것에게는 두 다리만 주면서 발가락을 덜 주고, 뿔이 있는 녀석에게는 윗니를 주지 않았다. 뒷다리가 아주 강한 동물은 앞발이 없거나 약하다. 꽃이 너무 좋으면 열매가 시원치 않은 것이 세상의 도리이다. 하늘의 도리는 이렇게 해서 겸손함을 일깨운다.
동진레저의 고유 브랜드 ‘블랙야크’는 티베트의 험준한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검은 소다. 신비롭고 강한 인상의 검은 소 ‘야크’는 매우 겸손하면서도 온순한 동물이다.
겉모습은 둔하고 어리숙해 보이기도 하나, 무려 60㎏ 이상의 짐을 지고도 천 길 낭떠러지의 절벽을 자유자재로 다닌다. 아주 희박한 산소와 매서운 바람과 추위, 가득 쌓이는 눈과 얼음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동물이다. 고산족들에게 운송을 도맡아 해주며, 고기와 우유로 영양까지 제공한다. 멋지고 긴 털은 단단한 로프로도 쓰인다. 극지 탐험에 나선 히말라야 원정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믿음직스러운 짐꾼 역할을 다한다.
강태선 사장의 어린 시절부터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던 야크는 블랙야크로 되살아났다. 히말라야 산맥과 한라산을 넘어 대한민국 땅 위에 우뚝 섰다. 히말라야를 지키고 있는 블랙야크는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그 눈동자 속에 담고 있다. 전문 산악인을 위한 기본기에 충실한 역할, 우직한 실천, 강인한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패기의 움직임. 그렇게 블랙야크는 살아 움직였다.

 


<티베트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야크>

강태선 사장은 블랙야크로 새천년의 꿈을 꾸었다. 산악인들을 위해서 제품을 만드는 산악인의 굳은 신

념과 다짐을 새천년의 떠오르는 해에 담았다. 대한민국의 강한 토종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강태선 사장의 의지는 새로운 천년으로 넘어왔다.

 

희망찬 새천년을 맞이하다

동진레저는 1999년 6월부터 매일경제신문에 경력사원 모집공고를 의욕적으로 집행했다. 상품기획, 무역, 전산, 영업, 관리 등 각 부문별로 맨파워 및 조직을 강화시켜 희망찬 새천년을 맞이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강태선 사장은 앞으로 지구촌 곳곳에 한국인의 발길과 함께 국산 토종 등산용품 브랜드가 퍼지길 바라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동지레저 온라인 쇼핑몰 광고>

새천년을 맞이한 동진레저는 2000년 1월부터 온라인쇼핑몰인 ‘e-shop’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Cyber shopping mall for mountaineers’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주소는 www.blackyak.co.kr로 온라인 영업을 처음 시도하게 되었다. 다른 업체들도 많은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터넷 혁명, 폭풍과도 같은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온라인 영업시대가 활짝 열렸다. 아직은 초기단계인 데다가 시장이 아직 작은 편이어서 대부분 다양한 상품과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


<2000년 동진레저 상품설명회>


2000년 1월 12일 동진레저는 로열로빈슨 상품 컨벤션을 신라호텔에서 개최했으며, 공식 수입공급원으로서 라푸마(Lafuma)와 마모트(Marmot) 등 수입의류와 함께 블랙야크 등의 패션쇼도 같이 선보였다. 라푸마의 경우에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공식 수입을 해오다가 중단되었다. 2004년 3월 LG패션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시장을 겨냥한 로열로빈슨은 봄부터 백화점 판매에도 들어가게 되었으며, 라푸마 역시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등에서 판매를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경영해오던 토종 브랜드인 프로자이언트는 이제 역사에서 퇴역의 길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강태선 사장은 가두시장 점령으로 매출 신장을 꾀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전국총판 체제에서 전문대리점 형태로 사업의 방향을 크게 전환시키게 되었다. 영업의 근본적인 변혁을 가하면서 2000년 2월부터 동진레저 대리점이 하나씩 개설되어갔다. 기존의 직영점인 본점을 비롯한 종로점, 남대문점에 이어서 동진레저는 을지로, 산본, 대구, 마산, 순천, 서산점을 대리점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전국총판 개념으로 거래해오던 전국 각지의 60여 개 등산장비판매점을 동진레저의 대리점으로 바꿀 포부를 가졌다. 이후 강태선 사장은 대리점 및 취급점 모집 전환에 집중했다.

<동진레저 대리점 오픈 고사>


1999년 4월부터 블랙야크는 기존 BI에 변화를 주었다. 삼각형을 없애고 ‘BLACK’과 ‘YAK’의 영문 사이에 야크 얼굴 형상을 위치시켰다. ‘BLACK’은 검정색으로 ‘YAK’는 청색으로 했으며, 야크 얼굴 형상은 흰색과 청색이 반반 대비되는 형태였다. 1999년 11월부터는 블랙야크의 광고도 한층 세련되어졌다. ‘What's problem? It's problem?’이라는 광고카피 아래 고급스러우면서도 심플한 광고로 익스페디션(Expedition) 알파인 파카와 가이드 재킷 등 주력인 전문 산악인용 상품을 선보였다.
2000년 1월부터는 삼각형 없이 ‘BLACK YAK’ 영문 가운데에 야크 얼굴 형상이 자리하는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흰색과 검정색으로 야크 얼굴은 계속 대비되었으며, 가로로 넓은 직사각형 바탕에 빨간색을 처음으로 적용시켰다. 그리고 광고에서 블랙야크의 로고와 함께 ‘BEST QUALITY FOR MOUNTAINEERS’라는 슬로건 형식의 광고카피를 처음 사용했다. 블랙야크가 전문 산악인을 위한 최고 품질의 제품임을 표방한 것이었다. 또한 5월부터는 ‘Designed by Mountaineer’라는 슬로건 문구를 광고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전문 산악인이 만드는 기능적・전문적인 신뢰의 제품임을 강조했다.
블랙야크의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리뉴얼은 다시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6월에는 사각형 안에 야크 얼굴의 형상이 들어가고 야생적이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빨간색 바탕 위에 흰색과 검정색 음양으로 대비되는 야크의 얼굴은 강인한 정신과 열정적인 패기를 담았다. 이로써 심벌마크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심벌마크 오른쪽에는 검정색으로 ‘BLACK YAK’ 브랜드 영문이, 그 아래에는 작게 빨간색으로 ‘DESIGNED BY MOUNTAINEER’라는 슬로건이 새겨졌다. 블랙야크의 공식 로고가 완성도 높게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전문 산악인을 위해 개발된 블랙야크의 익스페디션 시리즈는 뛰어난 성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런 여세를 몰아 2000년 9월에는 파격적인 잡지 광고를 집행하기도 했다. 지면의 몇 페이지를 그냥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컬렉션을 부록 형태의 소책자로 끼워 넣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이런 과감한 시도는 유명 수입 브랜드인 컬럼비아가 바로 다음 달에 따라하게 되었다.

2000년 11월 21일 동진레저는 자본금을 3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두 배나 증대시켰다. 그리고 12월 10~31일에는 ‘동진레저 창립 27주년 기념’으로 고객사은 대잔치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가자! 금강산으로’라는 이벤트였는데, 소정금액의 구매고객에게 금강산 여행권, 제주도 왕복항공권, 블랙야크 고어텍스 재킷과 등산화, 프로자이언트 배낭과 모자 등을 경품으로 준비했다. 한편 동진레저 대리점은 개설에 나선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총 17개로 늘어났다. 아직 대리점으로 전환하지 않은 취급점은 총 55개였다.

<2000년 12월 동진레저 창립 27주년 기념 고객사은 대잔치 추첨행사>


동진레저는 2000년도 매출을 59억 8,004만 원을 거두어 지난해에 비해 무려 70% 폭증이라는 놀라운 대위업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2억 7,432만 원으로 전년대비 41% 신장되었고, 당기순이익은 1억 2,516만 원으로 61%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수치상으로도 창업 이래 모두 신기록 돌파였다. 그리고 동진레저는 서울특별시장기 등반경기대회 등을 협찬하는 등 산악계 발전에도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해였다.

<2003년 서울시장기 등반경기대회 협찬>


2000년 1월 22일 서울시산악연맹은 참석 대의원 만장일치로 동진레저의 강태선 사장을 신임회장으로 선출했다. 동진레저로서는 경사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경영자의 외부 활동이 더욱 늘어나고, 산악계 발전을 위해 회사의 부담도 같이 늘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태선 사장은 산사람의 하나로서 작은 밀알의 역할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서울시산악연맹은 1999년에 시연맹 정관 문제가 발단이 되면서 큰 내부 진통을겪었는데, 당시 강태선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의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시연맹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회장을 처음 선출하는 뜻깊은 역사를 이번에 만들어냈다.

<2001년 강태선 사장 서울시산악연맹 회장 취임식>


준비된 자에게만 성공과 행운이

1973년 창업 이래, 동진레저는 일개의 등산장비 점포에서 도매상으로, 그리고 도매상에서 과감하게 전국 총판으로 변모했다. 그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도전의 길을 모색했고 산을 오르면서 산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힘들 때는 산이 그를 다독여주고 가르쳐주었다. 그는 “무리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나만의 길을 걸을 때, ‘빛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1991년 취사야영금지 이후, 강태선 사장은 등산의류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등산장비만으로 회사가 성장하는데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분명한 판단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1993년부터는 첨단 소재인 고어텍스 등을 적용시키면서 제품의 기능성을 꾸준히 높여왔다. 또한 전문 산악인의 시각과 입장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기능, 품질 좋은 제품을 추구한 경영철학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까반 등 의욕적으로 내세웠던 브랜드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강태선 사장은 “처음부터 잘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죠. 실패 또 실패, 반복되는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뿐이겠죠.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더 큰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까반은 블랙야크의 탄생과 정상 궤도 진입에 많은 참고와 공부가 되는 역할을 해주었죠.”라고 말했다.

 

<겨울산을 오른 강태선 사장>


그는 1995년부터 아웃도어 의류와 제품이 유럽, 미국, 일본처럼 부상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판단 아래 블랙야크를 새로운 무기로 야심차게 내놓았다. 그리고 대기업이나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몰려든다 해도 당당하게 승부할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강태선 사장은 “아웃도어 제품은 다른 나라의 제품이 기반을 닦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는 몽벨(mont-bell), 영국에는 버그하우스(Berghaus) 등 그 나라 고유의 브랜드가 장악을 하고 있죠. 기후와 체형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IMF 이후 국민들이 고급 스포츠를 자제하는 대신에 등산 쪽으로 관심을많이 가지게 된 경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죠. IMF 이후에는 등산 시장이 급성장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고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외국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상륙하고, 국내 대기업들이 등산용품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난국을 뚫고 나온 동진레저의 저력을 믿었습니다. 시장이 더욱 치열해지긴 했지만 블랙야크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역설했다.
강태선 사장은 국내 소비시장이 소득 증가에 따라 ‘보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바뀌며, 점점 고급화와 전문화가 병행되는 시대의 추세를 잘 읽어냈다. 주 고객층의 변화에도 대응을 했다. IMF 이후, 매장에 찾아오는 고객층 가운데 학생들의 비율이 현저히 감소했다. 취업준비 등에 밀려 산악부의 활동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강한 구매력을 가진 새로운 집단이 나타났다. 이른바 ‘아줌마부대’로 불리는 새로운 여성 고객층이 형성되었다. 등산장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특유의 입소문으로 ‘구전마케팅’의 역할도 하였다. 보통 30% 이상의 매출을 아줌마부대가 올려주었다.

기본에 충실한 강태선 사장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공격적인 투자와 경영을 아끼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다. 좋은 제품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힘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면 그는 바로 실천에 나섰다. 마치 본능처럼. 그리고 패션과의 과감한 결합, 전문적인 기능성의 부단한 노력, 그런 바탕 위에 올라탄 역발상 등이 동진레저를 상승기류에 몸을 싣도록 허락해주었다.

첨단 소재와 기능성의 보물창고

블랙야크와 함께 동진레저에서는 세계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방대한 브랜드와 다양한 전문등산장비를 갖추어 그야말로 ‘A to Z’의 보물창고였다. 2001년에는 수입 브랜드 중에서 마모트와 라푸마, 프랑스 몽블랑의 발끝인 샤모니(Chamonix)에서 탄생한 시몬(simond), 블랙다이아몬드 등의 등산장비 광고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블랙야크는 중국에서 판을 더 키우고 있었다. 2000년 9월에 베이징 연사백화점에 입점을 했으며, 다음해인 2001년에는 사이탄백화점에도 입점했다. 취급점도 15개까지 확대되는 등 중국에서의 사업이 갈수록 활발해졌다. 또한, 보이스카우트 수품의 국내 신뢰는 바다까지 건너게 해주었다. 2001년에 일본보이스카우트연맹으로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던 것이다.

 

<베이징 연사 백화점내 블랙야크 매장>


또한 동진레저는 2001년 8월에 일산점, 9월에 광주점 등이 개설되면서 직영점이 6개로 늘어났으며, 대리점은 20개로 확장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등산장비점이 산으로 몰리는 새로운 경향을 나타냈는데, 물론 동진레저 역시도 2000년 여름부터 직영점인 우이점이 산으로 진출했다. 이제 서울 도심에만 있었던 등산장비 전문점들이 산기슭에서 영업을 했다. 북한산 기슭에만 하더라도 4개의 판매점이 성업을 했다. 대부분 2000년에 문을 열었다. 등산객들이 갑자기 등산장비가 필요할 때 애를 먹었던 일은 이제 없게끔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의 국립공원 입구에서는 등산장비 매장들이 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동대문과 남대문 등 전문유통상가들의 위세에 눌려 있다가 IMF 이후에 이러한 풍속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시내 외곽에 위치한 까닭에 중심가에 있는 장비점보다 점포임대료가 저렴했으며, 당장 장비가 필요한 고객에게 바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맨 몸으로 집을 나서도 이곳에만 들리면 곧바로 산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동진레저 우이점>


블랙야크는 첨단 소재를 발 빠르게 적용시키는 과감한 모습을 견지해나갔다. 2001년에는 고어윈드스토퍼(GORE-WINDSTOPPER) 원단 제품을 선보였다. 이런 합성 플리스(Fleece)의 개발 및 적용은 아웃도어 의류에 있어 주목할 만한 발자취였다. 가볍고 따뜻하고 젖었을 경우에 빨리 건조되며 세탁까지 용이하기 때문이다. 고어윈드스토퍼 원단이 적용된 등산복은 방풍성, 투습성 기능과 내구성에 스트레치성까지 더한 우수한 활동성을 보장해주었다.
동진레저는 2001년 9월 산악전문잡지 안에 블랙야크 카탈로그를 ‘책속의 책’ 형태로 과감하게 광고했다. 새롭고 신선한 고유의 시스템을 적극 알리기 위함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ALS(ALPINIST LAYER SYSTEM)였다. 최적의 신체 상태를 보장하고 최고의 워킹 밸런스를 위한 알피니스트 레이어 시스템 ALS는 고난도 활동에 필요한 신개념의 착장 시스템이었다. 베이스(Base)와 미드(Mid), 아웃(Out) 레이어로 구별되었다.

먼저 알피니스트 베이스 레이어는 언더웨어 라인이었다. 일반 면에 비해 월등한 투습 능력을 가진 쿨맥스(COOLMAX) 소재로 높은 산행 쾌적지수를 보장했다. 이와 같은 첨단 소재로 제작된 기능성 티셔츠까지 베이스 레이어에 포함되었다.
주로 플리스 소재로 이뤄진 미드 레이어는 체열을 유지시켜주는 재킷, 팬츠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웃 레이어는 예상하기 어려운 대자연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방풍, 방수, 투습 기능이 있는 재킷 등의 라인으로 착용하면 최종적으로 3단계 착장 시스템인 ALS가 완성되었다. ALS는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바로 다음 달에는 컬럼비아가 ‘3 Layer’라는 이름으로 블랙야크의 착장 시스템과 같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광고를 집행했으며, 2002년 1월에는 몽벨이 ‘3 Layering System’을 출시했다.
첨단 소재와 기능으로 앞서 나가려는 블랙야크의 의지는 대단했다. 2001년 11월에는 고어텍스 XCR(GORE-TEX XCR) 원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고어텍스 원단보다도 투습성과 내구성이 25% 향상된 첨단 소재였다. 이 원단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곳은 블랙야크, 코오롱스포츠, 밀레, 노스페이스, 이렇게 단 네 군데밖에 없었다.
2002년 2월 블랙야크는 세계적인 명성의 아웃도어 원단을 생산하는 미국 넥스텍어플리케이션(Nextec Application)의 에픽(EPIC) 원단과 손을 잡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에픽은 방풍, 발수, 통기성 소재로서 국내 아웃도어 제품 선택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에픽 기술의 핵심은 원사 사이사이에 캡슐 모양의 발수, 통기성 신물질을 완벽하게 밀착시켜 섬유 구조의 치밀성을 유지시키는 데에 있었다.

<에픽 원단을 사용한 동진레저 제품광고>


블랙야크에는 실버테크(Silver-Tech) 원단도 적용되었다. 은 성분을 함유해 전자파 차단, 정전기 방지, 세균 억제, 단열・보온 효과 등이 있는 제품이었다. 기능 개선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었다. 배낭 등판에 통기성이 우수한 3중 에어메쉬(Air Mesh)를 분리시켜 공기의 순환을 유도하는 ACS(Air Comfortable System), 배낭 등판에 내구성이 좋은 코팅 메쉬를 설치해 쾌적한 산행을 돕는 ARS(Air Rotation System) 등도 선보였다.
블랙야크의 고품질을 향한 질주는 해외 명품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이미지와 실력을 쌓는데 있어 기본기였으며, 저력과 이력을 공고히 다지는 힘찬 실천이었다

산악인을 위한 신뢰가 가장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1년도 동진레저의 총매출액은 76억 4,971만 원으로 전년대비 27.9%의 성장을 이뤘다. 매출 규모의 신기록 달성은 이제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괄목상대해졌다. 영업이익 역시도 4억 2,391만 원으로 54.5%의 폭증세를 나타냈으며, 당기순이익은 9,11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감소하고 말았다.

일일판매원과 전산화시스템

2001년 9월, 산악인 모상현이 산악전문잡지 의 창간호 기획으로 동진레저 종로점에 현장체험을 나왔다. 그는 등산장비점의 일일판매원 체험을 하기 위해 발걸음했다. 모상현은 2000년에 에베레스트와 K2를 등정한 산악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장비를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서툴게 일을 거드느라 고생을 하고 돌아갔다. 잡지 10월 창간호에 실린 글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때 지난 물건들을 들고 2층 창고로 가니 쫙 짜여진 진열장에

갖가지 의복류가 치수별로 정돈되어 있는 게 마치 아파트

입구에 있는 우편함 같다. 시대는 바야흐로 ‘돼지털’ 시대!

장비점도 예외일 순 없다. 모든 종류의 물건들이 들고나는

상황이 바코드로 전산화되어 코드를 찍으면 현재의

재고량이 출력된다. 각 분점이 전산화로 통합됨은

물론, 오차율 0.5% 이내의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전에는 판매하는 물건 모두의 가격이 다 머리에 있었는데,

이제는 손으로 쓰지 않다 보니 70% 정도밖에는 못 외워서

바쁠 때 손님들을 기다리시게 해서 불편하죠.”
이 장비점에서만 10년을 근무했다는 김용남 과장의 얘긴데,

역시 경력 십 년차다운 말이다. 힘겹게 창고를 몇 번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덧 오후. 본격적인 판매를 해보기 위해

물건 잘 파는 요령을 물었다.
“양말 사러 온 손님에게 양말만 팔면 망하지.”
엥 이건 무슨 소린가?
“원하는 양말을 골라줌은 물론, 그 외에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고 권해보고, 가지고 있다면 더 고급의 것들을 소개해

줌으로 고객의 수준을 높여주어야 하죠.”
음, 역시 장사란 요령이 있었군.”


장부에 계속 의존해오던 동진레저는 본사, 직영점, 대리점, 취급점, 온라인쇼핑몰 등을 운영하면서부터 영업과 물류에서 많은 애를 먹게 되었다. 장부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재고가 얼마나 있는지, 어느 곳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등 자료를 파악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었다. 영업망의 변화에 따라 물류시스템도 대응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태선 사장은 1999년부터 대대적으로 전산 인력을 확충하고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해냈다. 전산화된 시스템에 의해 바코드를 찍으면 보다 쉽게 자료를 추적할 수 있는 최적의 영업물류시스템인 MIS전산화시스템을 2001년부터 가동시켰다.

<전산화시스템 도입으로 바코드를 찍으면 쉽게 재고현황 파악이 가능>

<2001년 종로점에 근무하던 이철남 상무>

 

한편, 일일판매원으로 온 산악인 모상현은 이철남 상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철남 상무는 과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문을 열고 8년만인가 처음으로 카라비너를 갖다 팔았는데, 그 때 근처의 다른 장비점 주인들은 그게 어디다 쓰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전문장비에 대한 지식이 없었죠. 강태선 사장과 직원들이 전문서적 등으로 공부하면서 여기까지 와보니, 어느새 늘어난 품목이 4,000~5,000가지에 이르게 되었네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장비가 가득한 동진레저의 매장에서 직원들은 12시간 꼬박 서서 일을 했다. 그런 불편함을 인내하면서 장비 박스를 옮기거나 제품을 정리하거나, 또는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은 주인을 만날 제품들을 보면서 바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마운티아 탄생과 유행 돌풍의 주공

2001년 가을, 동진레저는 여성용 등산복으로 블랙야크 고어애플자켓을 출시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검정색 일색인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블랙야크 고어애플자켓은 첨단 고어텍스를 적용시켰으며, 프린세스라인으로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고, 소매와 목 부분은 여성 체형에 잘 맞도록 설계되었다. 검정색 등산복 제품이 빅 히트로 이어질지는 업계에서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이 제품은 거대한 회오리로 돌풍의 주인공이 되면서 블랙야크를 견인하는 데 소금같은 역할을 했다.

 


“이건 또 웬 까마귀 떼야! 등산계에 블랙컬러 패션 붐이 일고 있다.

산 좀 다녔다는 등산인이면 검은 색깔의 의류를 선호하고,

암・빙벽 등반을 하는 전문 산악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검은색 의류를 입고 있다. 때문에 검은색으로 아래위 옷을 차려 입은

등산인들은 어느 산에서나 쉽

게 볼 수 있다.

 

특히 도봉산, 북한산 일원의 암릉에서는 검은색으로 옷 색깔을 통일시켜

떼를 지어 다니는 꾼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월간 산> 2002년 4월호 기사 중에서-


2002년 블랙컬러 패션이 산을 강타했다. 너무 심할 정도로 유행이 되어 개성 없고 획일적인 패션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부 나올 정도였다. 검정색 등산복의 돌풍은 가히 대단했다. 산 좀 다녔다 싶은 사람들은 10명 중에 6명꼴로 검은색 옷으로 위아래를 갖추거나 적어도 상의와 하의 중 하나는 검은 색깔이었다.


“어떤 장비점에 가든 검은색 계통의 등산복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선택권이 좁을 수밖에 없겠죠. 아무튼 좋잖아요.

때도 잘 타지 않고, 아무 데나 앉았다 일어난 다음 툭툭 털면 멀쩡해지니

등산복 컬러로야 더할 나위 없는 거죠.”
- 산악인 최정희의 인터뷰 중에서-


“손님들이 워낙 검은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색깔로

제품을 만들어 내놓았다가는 처지기가 일쑤입니다.”
- 남대문의 한 판매점 직원의 인터뷰 중에서-


블랙컬러 패션 붐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소규모 업체들은 독특한 색깔의 제품을 개발하지 않고 검은색 원단을 사용해 유행을 그대로 쫓았다.
한편, ‘2002 산의 해’를 맞이해 등산 인구는 더욱 늘어났으며, 2001년 말에 5개의 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등산객들은 서울에서 먼 거리에 있는 명산까지 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산행 인구와 횟수가 자연스럽게 늘었으며, 그 범위까지도 더욱 확장되었고, 당일 산행을 즐기는 무리들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편하면서도 다양한 기능성 소재 등에 매료된 사람들은 등산복으로 쓰던 옷들을 이제 골프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를 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도 입는 분위기가 막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나중에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2002년 7월 말, 동진레저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로 마운티아(Mountia)를 탄생시켰다. ‘마운틴(Mountain)’과 ‘유토피아(Utopia)’ 또는 ‘마니아(Mania)’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브랜드이다. 강태선 사장이 평소에 꿈꾸었던 ‘산을 즐기는 길, 산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유토피아와 마니아를 위한 후속타였다. 빨간색 사각형 형태 안에 브랜드의 이니셜인 ‘M’ 영문을 하얀색으로 형상화시켰다. 이 모양은 산의 모습이기도 했다. 심벌마크 아래에는 마운티아의 약자로 ‘MT.IA’라는 영문을 검정색으로 새겼다. 마운티아는 블랙야크의 동반자로서 아웃도어 시장에 새롭게 진입했다. 2002년 6월부터 롯데 마그넷에서 롯데마트로 이름을 바꾼 대형할인점에 바로 입점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브랜드 경영방침을 정했다. 이는 강태선 사장의 기본적인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마운티아 런칭 당시의 BI>


기존에 할인점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쿨맥스 원단 적용 제품을 저렴하게 선보였다. 할인점에서는 이렇게 좋은 원단을 사용한 예가 없었기에 상당히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대부분의 경쟁업체들은 싼 제조원가를 위해 중국에서 제품을 만들어왔는데, 동진레저는 철저하게 국내 생산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가치를 브랜드에 두지 않고 소비자에게 두는 파격적이면서도 거꾸로 뒤집힌 브랜드 철학을 내세웠다.
이렇게 마운티아가 가세를 하고, 검정색 등산복의 돌풍으로 인해 2002년도 동진레저의 매출액은 123억 3,911만 원으로 전년도 보다 무려 61.3%나 폭증했다. 100억 원대 규모 돌파라는 신기원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3억 5,262만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감소했으나, 당기순이익은 1억 7,965만 원으로 전년대비 97.2% 증가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동진레저는 2002년 12월 31일에 자본금을 6억 원에서 8억 원으로 확충했다. 그동안 수입 및 공급해왔던 라푸마는 손을 놓아 다른 기업이 수입판매하게 되었다. 이름이 있다 싶은 브랜드는 다른 기업들이 모두 탐을 냈다. 수많은 수입 브랜드의 요람이자 보물창고였던 동진레저는 수입공급원의 지위를 하나씩 놓아야함을 깨닫고 있었다. 동진레저의 영업 채널은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했다. 직영점이 6개, 대리점이 27개, 특약을 맺은 취급점이 52개로 늘어나 판매 신장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