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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YAK HISTORY

산악인과 함께한 46년간의 끊임없는 도전,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로

블랙야크의 탄생

산악인에게 신뢰받는 제품

동진레저는 1995년 이후에도 다양한 신제품과 기능 등을 계속 선보였다. 새로 내놓은 노스베이 파카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모자를 개선시켰고, 주머니는 지퍼를 열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을 했다. 특히 폴라플리스(Polar Fleece) 제품인 노스베이 라이너 재킷은 주머니를 위아래로 열게끔 제작하면서 모양을 단순화시켰다.
또한 프로 알피니스트가 원하는 언더웨어도 생산을 했다. 보온력과 흡수력, 착용감이 뛰어난 산악용 내의였다. 이 제품은 다른 아웃도어 스포츠의 언더웨어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우천 시에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레인 커버를 부착시키고, 플라스틱 프레임을 등판에 장착시켜 오랜 산행에서도 피로를 줄여주는 아우토반 배낭도 선보였다. 배낭에는 상하부에 물건 수납이 용이하도록 지퍼를 설계했으며, 그물망 주머니와 함께 폐쇄된 주머니까지도 장착시켰다.
동진레저는 전문용품에 대한 수입도 이전보다 훨씬 강화시켰다. 기존에는 제품을 구해 매장에 진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정식 수입공급원으로 계약을 맺고 제품을 판매하게 되었다. 수입공급원으로서 브랜드 홍보는 물론 제품의 광고까지 진행시켰다. 우선 미국의 블랙다이아몬드(BLACK DIAMOND)와 프랑스의 라푸마(Lafuma)가 수입공급원으로서 정식 판매되었다. 당시 블랙다이아몬드는 가볍고 강한 와이어 카라비너 등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프랑스 리보리조아니(Rivory Joanny)의 자일과 재킷도 판매했다.

<동진레저가 수입 판매한 블랙다이아몬드 광고>

<1995년 신상품 및 수입상품 설명회>


강태선 사장은 1995년 3월 6~7일 올림픽파크호텔에서 봄・여름 신상품 설명회를 개최했다. 전국 총판의 도매 개념에서 더욱 진일보하기 위한 행사였다. 예전과 달리 영업에는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전국의 등산장비 소매점과 스포츠센터 등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를 했다. 한 자리에 모인 그들에게 제품을 알리면서 유통 채널을 강화시키는 고리로 작용하도록 했다.
이날 강태선 사장은 “현재 소비자들이 쉽고 편안한 레저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등산장비 분야는 고전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따라서 등산장비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외국 제품을 능가하는 제품 생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동진레저의 운영방침을 대외적으로 밝혔다. 강태선 사장은 ‘기능 만족 100%로의 도전’이라는 목표를 이 자리에서 강조했다. 동진레저는 1995년 9월 20일 가을・겨울 신상품 및 수입등산장비 설명회를 개최했다. 전국 각지의 45개 판매업체와 6개의 동진레저 협력업체가 참석을 했다. 강태선 사장은 “등산장비도 세계화 시대를 맞아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층 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소비자가 원한다면 외국산 장비를 수입해야 한다. 우수한 수입 제품과 경쟁을 벌여야만 국내 제품도 발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제품과 경쟁하면서 단련된다면 그들을 앞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동진레저의 제품을 판매하는 전국 각지의 판매업체들은 전문 산악인에게 필요한 제품, 기능에 충실한 상품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산악인들에게 신뢰받는 이유를 느끼고 돌아갔다.

산악인의 명예로 명품 탄생

프로자이언트와 까반 브랜드로 사업을 경영해오던 강태선 사장은 품격 높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갈망으로 기존 브랜드의 인수 등도 적극 검토를 하였다. 그는 ‘쟈칼’이라는 브랜드를 인수할 의향을 가졌다. 대준물산의 쟈칼은 1984년에 탄생되어 연간 2,000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할 만큼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취사야영금지의 높은 파도를 넘지 못하고 대준물산은 1993년 2월에 부도가 났다. 해외에 현지공장을 여럿 두기도 했는데 투자 실패와 경기 악화 등에 그만 좌초되었던 것이다. 결국 동진레저는 쟈칼 브랜드를 인수하지 못했다. 이후 1998년에 레펙스라는 회사가 쟈칼 브랜드를 살려 시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강태선 사장은 1993년 8월 히말라야 초오유와 시샤팡마 원정 당시에 보았던 야크를 브랜드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소띠인 강태선 사장은 오랜 세월 한라산에서부터 야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살아왔다. 상상해오던 야크가 바로 눈앞에 서있던 감격스러운 히말라야의 장면은 되돌아온 뒤에도 항시 떠나지 않는 기억이었다. 당시 거봉산악회 원정팀 홍영길 대장이 찍어온 수많은 야크의 사진으로 검토와 논의를 거듭했다. 고유명사인 ‘야크’만으로는 상표 등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식하는 단어를 붙이기로 했다. ‘블랙야크’, ‘레드야크’, ‘화이트야크’ 등 여러 후보 등이 있었다. 가장 야크다운 고유의 색상은 흑갈색이었다. 강렬한 이미지와 어감 등을 고려하기로 했다. 또한 로고 등은 야크의 얼굴과 생김새, 등반하는 모습, 짐을 진 장면 등을 검토했다.

<유심히 야크를 보고 있는 강태선 사장>


동진레저는 전문업체에 야크의 상표와 함께 BI 작업을 의뢰했다. 1995년 여름 야크의 여러 상표와 로고 등이 제시되었다. 마침내 동진레저는 새로운 브랜드로 ‘블랙야크’를 결정했으며, BI는 강인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야크의 뿔과얼굴을 형상화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삼각형의 도형 안에 흰색과 검정색으로 야크의 얼굴을 나누어 처리하고, 바탕은 흰색과 청색으로 나누었다. 전문 산악인의 곁에서 고산 등반을 도와주는 제2의 셰르파이기도 한 야크는 그렇게 히말라야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다와 산을 건너오게 되었다.
동진레저는 1995년 11월부터 광고를 통해 블랙야크의 탄생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등산용품의 신 귀족주의 선언 - 블랙야크 1995년 12월 1일 탄생”이라고 강조했다. 블랙야크의 브랜드 이미지를 명품으로 런칭시켰다. ‘신뢰와 명예’로 태어나는 브랜드로서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고 믿음으로 삶을 영위하는 산악인’을 위한 제품임을 적극 알렸다.

<블랙야크 초창기 BI>


“블랙야크는 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삶의 법칙을

체험해가는 전문 산악인을 위한 명품으로 태어났습니다.

티베트와 중앙아시아에 널리 서식하고, 사람 다음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갈 수 있는 블랙야크, 강인한 힘과 투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유순한 성격으로 사람을 도와

고산 등반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고의 카피를 통해 유행을 쫓아가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산악인을 위한 전문적인 상품이자 명품임을 표방했다. 자체 브랜드 개발로 장기적인 성장의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는 동진레저의 새로운 경영전략이기도 했다. 이제 프로자이언트는 중저가 시장을 목표로 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까반은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며, 새로운 브랜드인 블랙야크는 고기능, 고품질의 명품으로 자리를 지키겠다는 포부였다.



 

도전을 통해 거듭나는 동진레저

동진레저는 전체적으로 이미지를 가다듬기 위한 노력들을 해나갔다. 1996년 1월에는 프로자이언트의 새로운 이미지를 쌓기 위해 새롭게 변신한 BI를 선보였다. 이로써 프로자이언트는 보다 전문적인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객의 믿음에 최고의 상품으로 보답하겠다는 강태선 사장의 경영 의지가 담겼다.
뒤이어 3월에는 동진레저의 새로운 심벌마크가 광고를 통해 발표되었다. 로마자 이니셜인 ‘D’와 ’J’를 형상화시켰다. 청색 및 검정색의 조화는 미래에 대한 비전 및 진취적인 기상이 어우러져 도전과 개척정신이 함축된 강인함을 나타냈다. 참신한 서비스, 완벽한 품질로 봉사하는 ‘주식회사 동진레저’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CI의 탄생이었다.

<‘D’와 'J'를 형상화한 동진레저의 CI>

“도전을 통해 거듭나는 동진레저 정상을 향한 새로운 모습입니다.
전문산악용품만을 고집하며 끝없는 도전과 개척으로 이어져온

동진의 사반세기 - 이제 많은 산악인의 신뢰와 사랑 속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동진은 산악인의 명예를 지켜가는 기업으로 앞서 나가겠습니다.”


이와 함께 신뢰와 명예로 태어난 블랙야크, 24년 동안 전문 산악인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아온 프로자이언트의 재탄생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한편, 갓 탄생한 블랙야크는 4월에 첫 상품으로 의류를 출시했다. 강태선 사장은 블랙야크를 의류에 집중시키기로 했다. 등산의류가 매출의 10% 정도에 불과했으나, 앞으로 패션을 가미한 아웃도어 시장이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
동진레저는 전문 산악인을 위한 수입제품 공급도 한층 늘렸다. 블랙다이아몬드와 라푸마 등에 이어서, 동진레저는 이스라엘 모단(modan)의 익스플로러라인(Explore Line) 배낭 수입공급원이 되었다. 모단의 익스플로러라인은 인체공학과 생체역학을 기초로 한 혁신적인 배낭 시리즈였다.
세계의 명품과 함께하는 동진레저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6월에는 미국의 로열로빈스(Royal Robbins)의 수입공급원으로서 첫 광고를 집행했다. 세계적인 등반가의 이름으로 탄생된 브랜드로서 코튼(Cotton) 소재 의류가 주력이었다. 로열로빈스는 캐주얼 의류와 아웃도어는 물론 타운웨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동진레저는 이를 기반으로 캐주얼과 아웃도어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다.
세계적인 많은 명품들이 동진레저와 속속 함께했다. 수입공급원의 위치로 각 품목별로 최고를 자랑하는 상품들을 책임지게 되었다. 산악인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매장을 만들었던 셈이다. 미국의 블랙다이아몬드와 로열로빈스, 그리고 마모트(Marmot), 맥네트(McNETT), 리지뷰(RIDGEVIEW), 실스킨즈(SEAL SKINZ), 선(SUN), 달그렌(DAHLGREN), 날진(NALGENE), 프랑스의 라푸마와 리보리조아니를 비롯해, 발란드레(Valandre), 세베(CEBE), 독일의 레키(LEKI), 이탈리아의 스카르파(SCARPA), 스웨덴의 크래프트(CRAFT), 이스라엘의 모단(modan), 노르웨이의 아이리스(IRIS), 스위스의 렉타(RECTA), 영국의 제이비(jb) 등 모두 20개에 이르렀다.
1996년 11월, 압구정 본사의 매장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영동본점으로 명명했다.

이렇게 영동본점이 오픈을 하면서 더욱 풍부해진 전문산악용품으로 선택의 폭과 기회를 넓혔다. 1층에는 등산용품과 아웃도어웨어, 2층에는 스키용품, 3층에는 스키웨어를 전시했다.

<영동본점>


같은 시기인 11월 5일, 골드윈코리아가 일본의 골드윈과 노스페이스 생산 및 수입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등산, 스키, 스포츠웨어 국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발표했다. 골드윈코리아는 이전까지 스키에만 주력해왔는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진 노스페이스로 사계절 영업 전개를 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노스페이스는 등산의류 및 장비뿐만 아니라 잠재 고객인 신세대를 위한 스포츠캐주얼 부문도 같이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동안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의 OEM 공급기지 역할을 해왔었다.
한편, 레포츠와 야외복으로 겸용할 수 있는 아웃도어웨어 시장이 새로운 의류 틈새시장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7년부터 프랑스의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이탈리아의 휠라(FILA)를 비롯해 10여 개 업체가 브랜드 런칭을 하면서 치열한 판촉전에 들어갔다. 최근 2~3년 동안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아웃도어웨어 시장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레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레저에 필요한 의류를 구입해 마치 평상복처럼 입으면서 생겨난 틈새시장이었다.



자본 증자와 성장

동진레저는 1996년 11월 27일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대규모 패션 이벤트에 참여했다. 행사 주최자는 고어코리아였다. 동진레저를 비롯해 코오롱스포츠, 프로스펙스 등 고어텍스 원단을 공식 생산 및 판매하는 업체들이 모두 참여했다. 생활 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웨어 원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어텍스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고, 레저웨어로서의 새로운 시도 등을 보여주게 되었다.
동진레저의 새로운 명품 브랜드인 블랙야크는 고어텍스를 적용시켰다. ‘산에서 입는 정장의 품격’으로 소개를 했다. 자연의 숨결이 와 닿는 첨단 소재와 기능면에서 자연이 원하는 격식을 제대로 갖추었다.

<블랙야크 익스피디션 라이트 패션 재킷>


이후 블랙야크의 소재와 기능은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다. 특히 블랙야크의 익스피디션 라이트 패션 재킷은 국내 최초로 고어와 듀폰(DuPont)의 첨단 소재를 동시에 적용시켰다. 두 가지 첨단 소재의 장점을 환상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기능을 요구하는 등산용 의류로서는 물론 아웃도어웨어로서도 착용할 수 있게끔 패션과 기능을 조화시켰다.
고어텍스와 함께 적용된 듀폰의 코듀라 플러스(Cordura Plus) 원단은 일반 나일론의 4배, 면섬유의 20배, 폴리프로필렌의 3배에 달하는 마모 내구성을 갖추었고, 보푸라기나 필링(Pilling) 방지성이 우수하며, 새로이 첨가된 탁월한 부드러움으로 우수한 기능뿐만 아니라 멋진 스타일까지 가능했다. 동진레저는 가장 열악한 조건의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함과 패션의 결합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동진레저는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면서 상승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1996년 12월 15일에는 발행주식을 2만 주에서 6만 주로 크게 늘렸다. 자본금이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크게 확충되었다. 한편, 동진레저의 1996년도 매출액은 40억 1,064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무려 40%의 폭증을 나타냈다. 30억 원에 조금 모자라던 규모가 놀랍게 신장되었다. 영업이익은 1억 268만 원으로 전년대비 130%라는 놀라운 기록을 작성했으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억 원대를 돌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도 8,438만 원으로 전년대비 83%나 신장되었다.
그리고 등산의류는 새로운 붐으로 싹트고 있었다. 아웃도어웨어를 평상복 개념으로 입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산악인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히말라야 고산 등반과 극지 탐험 등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으면서 유명 산악인이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특히,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과 횡단, 북극점과 남극점 등을 원정해 유명세를 탄 허영호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TV CF에까지 등장을 했는데, 이때까지 산악인이 TV 광고모델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1992년에 진웅의 퀘스트 텐트 TV 광고를 찍었을 때만 하더라도 등산장비 광고였지만, 1996년에는 삼성전자의 애니콜과 일동제약의 아로나민골드, OB의 수퍼드라이맥주 등 다양한 상품 광고에 등장을 했다. 그야말로 등산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셈이다.
허영호는 1995년 12월 남극의 최고봉인 빈슨매시프를 등정하면서 3대 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은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1987년 12월 세계 최고봉이자 3대 극점 중에 하나인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992년 2월 남미 아콩카과, 5월에 북미 매킨리, 12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Kilimanjaro, 5,895m), 1994년 1월 남극점, 11월 오세아니아 칼스텐츠(Carstenszt, 4,884m), 1995년 3월 북극점, 9월 유럽의 엘브루스(Elburs, 5,642m)를 등정했다.



 

중국으로의 재도전

1993년 중국 다롄에 공장을 마련했던 동진레저는 많은 난관 때문에 철수했다. 약 2년 만에 뼈아픈 투자 실패를 맛보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연속 때문이었다. 전력이 모자란다고 일방적으로 단전을 하거나, 공장 출입 차량 때문에 주변 도로가 많이 파손되었다며 도로 보수비용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원단을 빼돌리는 중국 직원들까지도 있었다. 기반 시설과 물류 시스템도 너무 낙후되어 어려운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중국을 배웠던 셈이다.
그러나 강태선 사장은 중국 시장에 대해 강한 고집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물러나지 않고 다시 기회를 노렸다. 결국, 동진레저는 1996년에 톈진(天津)에 다시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이번에는 50만 달러로 투자규모도 한층 늘렸다. 첫 번째 실패를 교훈삼아 성공적인 시스템 안착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원부자재를 한국에서 가져가 난이도가 낮은 작업을 위주로 공장을 돌렸다. 강태선 사장의 원대한 포부인 중국 시장 공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편, 강태선 사장은 중국등산협회 관계자들과 인연을 쌓으면서 중국 공장 운영에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한산악연맹이 1994년에 중국등산협회와 우호협력조약을 맺었고, 1996년에는 합동으로 충모강리와 릉보강리를 올라 세계 첫 등정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강태선 사장은 대한산악연맹의 부회장이었다.
중국등산협회 왕부주 주석과 임원들을 동진레저 본사에 초청하기도 했다. 왕부주 주석은 중국 최초로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등정의 기록을 가진 유명한 산악인이었다. 서로 한・중 산악 교류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중국 사업에 대해 조언도 구했다. 왕부주 주석은 블랙야크 등산복을 입어보고는 좋은 품질의 제품이 중국 산악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강한 ‘시(關係)’를 갖게 되었다.

<중국 베이징에 블랙야크 1호점 풍우설 오픈>


이렇게 정착을 해가면서 동진레저는 1997년 10월 21일 중국에 블랙야크 상표를 등록했다. 1998년 1월 10일, 마침내 베이징에 50평 규모의 블랙야크 1호점인 풍우설(風雨雪)을 오픈시켰다. 아웃도어 시장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던 것이다. 중국등산협회에서는 “한국의 등산장비전문점이 문을 연 것을 축하하며 중국 산악인들이 좋은 장비를 갖추고 산을 오르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IMF 외환위기 속에서 이렇게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에서는 다들 의아하게 생각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타고난 모험가이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도전을 즐기는 강태선 사장은 역발상으로 뛰어들었다.

곤지암에 닻을 내리다
동진레저는 1997년 2월 25일 물류센터 및 공장을 착공하게 되었다. 곤지암물류센터는 지상 2층 규모로 건축 허가를 승인받았다. 강태선 사장은 부족한 건설 자금은 차입을 해서 짓기로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성남의 물류창고를 처분해 갚기로 마음을 먹었다. 성남의 물류창고는 풍생고등학교 옆에 위치했으며 약 200평 정도의 규모였는데, 물류센터라고 하기에는 시설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보이스카우트 수품 납품 등 전체적인 물류가 계속 늘어나면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쪽에도 작은 창고를 두고 있었다.

<곤지암 물류센터 준공>


동진레저는 제대로 된 대형 물류센터가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강태선 사장은 물류센터 착공을 보고난 이후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원정팀의 대장으로 길을 떠났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강태선 사장은 곤지암에 가서 놀라고 말았다. 물류센터가 너무 졸속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가지 않고 물류센터 현장을 직접 지휘했으면 생기지 않을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렸다. 짓던 건물을 중간에 철거시키고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사 현장에서 물이 솟아나왔다. 압구정 사옥 본사를 지을 때와 비슷한 실정이었다. 이곳은 알고 보니 산비탈을 따라 물이 내려오는 위치였다. 감당할 수 없는 물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는 물을 유도해 그 자리에 우물을 만들었다. 우물의 물이 너무 많아지면 하수도로 내려가도록 공사를 지시했다. 물 때문에 공사 진척은 느려졌다.
1997년 9월 4일 곤지암물류센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 496-4번지에 위치한 물류센터는 10월 6일 사용승인필증을 교부받았으며, 10월 10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총 20여 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대지 2,000평에 연건평 800평 규모였다. 효율적인 물품관리시스템을 갖춘 물품관리동 2동과 함께 생산공장 1동이 들어섰다. 공장에서는 주로 배낭과 의류를 생산했다.

그런데 동진레저는 늦은 공사 때문에 차입한 자금의 압박을 받게 되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IMF 외환위기가 바로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성남 물류창고는 매각할 곳이 없었다. 어쩌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도 헐값으로 흥정을 했다. 경영의 위기가 동진레저를 감쌌지만 그는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강태선 사장은 히말라야에서 죽음처럼 힘든 산을 겪어본 산악인으로서 의연하게 위기를 대처하리라 마음먹었다.

<1997년 동진레저 상품설명회>


한편, 1997년 9월 4일 동진레저는 신상품 설명회를 개최했다. 열 차단 및 보온은 물론 항균, 방취기능이 탁월한 블랙야크 고어텍스 원정용 파카 제품을 선보였다. 안전벨트 사용 시에 포켓 고유의 기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이기도 했다. 마찰력이 우수하고 발목 보호 특수패드까지 내장된 네 종류의 신형 등산화 등도 소개되었다. 또한 자존심을 걸고 만든 내부 온도 유지 및 습기 방지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는 고어텐트, 내부 보온 효과를 한층 높이고 고산에서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슈퍼 고어텐트가 눈길을 끌었다.